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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은 손주,
 

 붓골(筆洞)<261>

 안양광역신문사(aknews0511@daum.net)

 2020-11-20 오후 6:23:56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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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박달2동에 위치한 붓골(筆洞) 지역 사진이다.

예로부터 물이 풍부하고 농지가 비옥하여 해마다 풍년이 들자 인근마을 사람들이 부자가 많이 사는 고을이라 하여 부골(富谷)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붓골이 되었다.

조선조 능성구씨가 정착한 이래 안동권씨, 전주이씨, 김해김씨 등 40여 호가 집단을 이루어 풍요롭게 살았다.

살기 좋던 마을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7년 일본군부에 의해 평양육군병기창 안양분창이라는 탄약을 관리하는 군부대를 설치한 후 마을이 폐쇄됐으며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박달1리 먹해들로 강제로 쫓겨나 박토에서 어렵게 농사를 짓고 살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는 탄약고를 관리하는 미군이 주둔하였고 지금은 육군공병대와 박달예비군 훈련장이 있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용지가 되었다. 

글 사진 : 안양시 만안구 박달2동 우성아파트 이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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